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골다 메이어 (문단 편집) == 총리 재임 == 1972년 [[1972 뮌헨 올림픽|뮌헨 올림픽]] 당시 검은 9월단이 [[뮌헨 올림픽 참사|이스라엘 선수 11명을 죽이자]] 메이어는 이에 대한 반격으로 [[모사드]]에게 테러리스트를 사살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때는 이집트와 시리아가 전쟁 준비를 할 동안 이전 전쟁에서의 연이은 승리로 인해 방심하여 대비를 소홀히 했다가 기습공격을 받아 초반에 큰 위기에 처하게 된다.[* 당시 사진을 보면 이스라엘군의 연패 소식을 전달받자 머리를 싸매고 괴로워했고, 인터뷰에서 "열등한 아랍인들에게 우리가 이렇게 지다니..." 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미국]]의 지원으로 간신히 전쟁을 뒤집었지만, 이 때 입은 엄청난 피해는 국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의회에서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청문회까지 벌였다. 1973년 12월 열린 총선[* 원래는 10월에 치룰 예정이었으나 제4차 중동전쟁 때문에 2개월 미뤄졌다.]에서는 간신히 승리하여 총리직은 유지했지만 결국 1974년 4월 새 내각이 들어선지 한 달 만에 정국의 안정을 위해서 [[총리]]직을 사임했으며[* 후임 총리에는 [[이츠하크 라빈]]이 임명되었다.], [[국회의원]]직의 잔여 [[임기]]를 마무리한 것으로 정계에서 은퇴했다. 그 뒤에는 은거하면서 [[회고록]]을 쓰거나 [[요양]]했는데, 1977년 가을에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국회의사당에서 [[VIP]] 자격으로 [[안와르 사다트]](당시 [[이집트]] [[대통령]])의 연설에 참관하여 악수하고 대화를 나눈 것이 그녀의 마지막 정치활동이었고, [[IBA|이스라엘방송공단]]의 [[텔레비전]][[방송국]]의 [[프로그램]]에 출연해 그녀의 [[인생]]에 대하여 [[구술]]하거나 국내외의 정세에 대하여 의견을 표한 것이 그녀의 마지막 사회활동이었다. 1978년 12월 8일에 예루살렘에서 지병인 림프종이 악화되어 80세로 숨졌고, 12월 12일에 사망지인 예루살렘 근처의 헤르츨 산에 매장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